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문단 편집) == 가족 == 아내가 총 5명이고 자식도 5명이다.[* 재혼을 거듭한 결과다. 로마 사회는 일부일처제이고 이혼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혼하는 걸 그리 나쁘게 보지 않았다.] 첫 번째 아내는 일리아이다.[* 키베니가 일리아라는 기록은 사료가 오염된 탓이라며 카이사르의 친척인 율리아라는 설을 냈다. 물론 가능은 한 이야기지만, 증거가 전혀 없다. 근거가 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애초에 라틴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거니와, 그것에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할 만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루키우스 카이사르의 딸이 있었던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콜린 맥캘로우의 명저 《[[마스터스 오브 로마]]》에서는 이 설을 차용해 술라의 첫번째 아내로 카이사르의 고모인 율리아의 동생 율릴라가 등장한다. 물론 율릴라라는 인물 자체는 창작인물.] 두 번째 아내인 아일리아는 아이가 없었던 것 같다. 세 번째 아내인 클로일리아도 마찬가지. 술라는 기원전 88년에 클로일리아와 이혼하고 최고제사장이었던[* 물론 술라가 결혼한 시기에는 이미 고인이었고 당시에는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기원전 95년 집정관)|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가 최고 제사장이었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의 딸 카이킬리아 메텔라 달마티카[* 술라와 결혼하기 전에 원로원의 1인자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의 아내였다. 물론 스카우루스는 술라가 삼니움족과 싸울 때, 카이킬리아와 술라의 결혼 전에 이미 사망했다.]와 결혼했다. 메텔루스 가문은 마리우스의 전성기 이전부터 위세를 떨치던 보수파 가문으로 그 영향력이 상당했다. 따라서 술라는 메텔루스 가와 정치적 동맹을 맺게 되었다. 메텔라는 마리우스가 대학살을 벌일 때 술라에게서 낳은 파우스투스와 파우스타를 데리고 그리스로 대피했다. 파우스투스는 훗날 [[탑수스 전투]]에 참전하여 카이사르에게 패사했다. 파우스투스는 [[폼페이우스]]의 딸과 결혼했는데 그 후손들은 제정 초기까지 살아남아 1세기 초에는 집정관을 역임하고, [[클라우디우스 1세]]의 장녀 [[클라우디아 안토니아]]와 결혼해 황실과도 친척이 되는 등 명문가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파우스투스의 동명이인 손자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와 그 일가는 [[네로]]에게 "인품이 훌륭하고 기품이 있다"는 이유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아우구스투스]]의 직계손 [[브리타니쿠스]]의 외삼촌인 이유 등으로 견제를 받았다. 술라의 독재관 취임 후에 메텔라 달마티카는 사망했다. 그 후 술라는 검투 경기 관람 중 한 젊은 여인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술라의 토가에서 실밥을 뽑아 가져갔다. 이에 술라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묻자, '당신의 행운을 제가 조금이나마 얻고 싶어서 그랬어요'라고 답했다고. 이 여인은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의 딸 발레리아로 술라의 마지막 아내였다. 딸 코르넬리아 포스투미아를 낳았는데 그녀에 대한 술라 사후의 기록은 잘 남아있지 않다. 조카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카이사르의 내전]] 당시 카이사르파에 가담해 [[디라키움 공방전]]에 참전했고, [[파르살루스 전투]]에서는 카이사르군의 우익을 지휘했다. 푸블리우스는 기원전 65년 집정관에 당선되었으나 뇌물로 인한 선거 부정으로 판결되어 원로원에서 추방되는 등의 굴욕을 겪었고, [[카틸리나]]의 음모의 가담자로 기소되었지만 [[키케로]]의 변호로 겨우 살아난 바 있었다. 술라의 차남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폼페이아 마그나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는데, 이중 장손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쿨루스[* 서기 31년 집정관을 지냈고, 40살의 한창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가 [[메살리나]]의 어머니 소 도미티아 레피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술라의 증손자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다. 술라의 증손자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는 팔라스와 부루스의 반역모의 혐의 사건에 연루됐다고 누명을 쓰면서 두 번이나 반역재판에 기소됐고 끝내 네로의 사주를 받아 암살됐다. 그는 당대, 후대 로마인의 평가 그대로 자신의 조상 술라처럼 악인이 아니었지만 인품과 언행 속에서 피어난 특유의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파벌을 모으지 않았는데. 이런 행동은 특유의 온화한 인품 속에서 그를 '따뜻하고 고결한 귀족'으로 이름 높인 이유가 됐다. 그래서 타키투스는 이런 그가 네로의 만행에도 묵묵히 견디고 어떤 저항도 하지 않다가 죽은 것에 대해 "조심성이 많고 소심하고 비열한 구석이 있다"며 네로의 탄압에 저항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면서 그 아쉬움을 표현했다. 또 타키투스는 네로가 펠릭스가 가진 고결한 인품과 대중들의 존경을 매우 두려워했다며 그가 네로에게 맞설 어떤 지위도, 권한도 없고, 자신의 증조부처럼 냉혹한 음모를 꾸밀 성격과 재능이 없었다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 어쨌든 술라의 직계후손인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는 술라와 다른 묘한 매력과 타고난 인품으로 원로원 동료와 민중들에게 20대의 나이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술라와 달리, 증손자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는 나이에 비해 회백색 머리였고 새치머리가 많았다. 그래서 네로는 이것을 약점 잡아 그가 대머리가 아님에도 "숱이 없는 대머리"로 공개적으로 놀리면서 의도적으로 불경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다.] 이런 평판은 "인기가 많고 훌륭해 문제다"고 네로에게 원한을 사서 서기 55년부터 시작된 네로 시대 동안 큰 고초를 겪게 된 이유가 됐다. 그는 네로, [[세네카]], 부루스, 타겔리누스에게 모두 제거대상이 됐다. 그러나 애초부터 생사람에게 없던 죄를 뒤집어 씌우고, 증인들도 말이 맞지 않아, 네로와 그 추종세력들의 집요한 공격과 두 재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네로는 자신의 고종사촌형으로 고모의 아들인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를 진짜 미워하고 시기해[* 여기에는 파우스투스가 워낙 인품이 훌륭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네로가 자신의 입양누이이자 전처의 언니였던, 클라우디아 안토니아 공주를 짝사랑했던 것도 컸다.], 무죄판결 뒤에도 어거지로 그에게 유죄를 내리고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오늘날의 [[마르세유]]로 유배보냈다. 이렇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갈리아로 추방된 그는 이곳에서 고초를 겪다가 네로의 명령을 받은 근위대장 [[티겔리누스]]에게 암살됐다. 이후 로마에 남은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 안토니아]] 공주와 술라의 직계 일가 역시 피소 음모때 누명을 뒤집어 쓰고 모두 살해됐다.[* 피소 음모 자체의 진상과 별개로 네로는 클라우디아 안토니아에게 결혼을 제안하고 청혼까지 했다. 하지만 클라우디아 안토니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매일 같이 희롱하고, 남편에게 어기지로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동생들까지 살해한 네로의 청혼을 거절했다. 이에 네로는 근친상간까지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아예 증거도 없이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아우구스투스의 마지막 혈육인 클라우디아 안토니아 공주를 죽여버린다.] 술라의 직계는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가 서기 63년 살해된 이후 그 명맥이 끊겼는데,[*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와 클라우디아 안토니아 부부는 사이에 펠릭스로 불린 아들을 뒀지만, 두돌만에 요절해 그 뒤를 이을 아들이나 딸이 없는 상태였다. ] 술라 가문 중 가문명을 이을 친척 귀족들도 피소 음모 사건 당시 네로에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큰 고초를 겪어 그 위세가 약화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주 적게나마 술라 일가 방계는 생존했는데, 이들 술라 일가 후손들 역시 서기 3세기 초인 [[세베루스 왕조]]때 마지막 후손이 억울하게 살해당하면서 완전히 멸문했다. 이 사건에 관해, 동시대 사람으로 당시 고위 원로원 의원이자 전직집정관이었던, [[디오 카시우스]]는 술라 가문의 마지막 후손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카파도키아]] 총독으로 있던 중, 로마의 미치광이로 유명한 [[엘라가발루스]]에게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살해당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